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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플렘와치] 독 01.

 

01.

 


 

그게 날 이끌던 걸 느낀 적 있지 분명

그 시작을 기억해

 

 


“지난 5월 23일에 이어 3일 전 또 다시 연쇄 유괴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유괴된 피해 아동은 서울 중구 주교동 ㅁㅁ아파트에 살던 7세 이윤호 군으로..”

 


식탁에 앉아 식사를 챙겨주던 엄마가 안타까운 얼굴로 기겁을 하며 탄식했다.

 


“어머 세상에 끔찍해라.. 또 유괴 사건이 일어났나봐요.”

“그러게나 말이야. 이번이 내가 기억하기론 세 번째 같은데.”

“없어진 아이들 부모 속이 말이 아니겠어요.”

 


세상에 그렇게 끔찍할 수 없다는 얼굴로 엄마는 여전한 움직임으로 재걸의 밥그릇 위에 생선살을 발라서 놔주었다. 재걸은 모래를 씹는 표정으로 밥알을 꾸역꾸역 씹어 넘겼다. 아빠와 엄마의 대화가 불편했다.

 


“재걸아.”

“네, 아빠.”

“아침부터 밥상에서 표정이 그게 뭐니.”

 


자상한 척했지만 분명한 꾸지람이었다. 재걸은 아빠의 말을 듣고 억지로 표정을 피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재걸의 표정을 살핀 엄마는 걱정스레 물었다.

 


“반찬이 맛이 없니? 소시지 구워줄까?”

“아니요.”

“조재걸.”

“여보.”

 


엄마는 뭐라고 하려는 아빠에게 소곤거리며 말했지만 사실 재걸의 귀엔 다 들리는 크기였다.

 


“너무 그러지 말아요.”

“맛없는 거 아니에요. 졸려서 그래요.”

“그러니? 어머. 벌써 40분이네. 더 안 먹어도 괜찮을까?”

“네. 배고프면 가다가 사먹을게요.”

 


재걸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가방을 챙겨 현관문으로 걸었다. 엄마가 여전히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굳이 티를 내진 않았다. 8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라 바깥은 선선했다. 곧 시험기간이 다가오는데 머릿속엔 시험범위나 공부에 대한 생각은커녕 오늘 아침에 본 뉴스 내용만 빙그르르 맴돌았다. 한 달에 한 명씩 어린 아이들을 유괴하는 유괴범. 벌써 같은 내용을 본지 세 달째였다. 4월 달과 5월 달에 없어진 아이들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그 애들은 이미 죽었거나 죽어서 어딘가에 차갑게 널브러져 있을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그런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

 

 

재걸은 학교가 몹시 따분한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고등학교의 어느 학생이라고 학교가 재미있겠냐만 재걸은 그 중에서도 특출하게 학교를 시시해하는 학생이었다. 아니, 시시해한다기보다는 아무런 흥미도 없는 게 맞았다. 재걸은 공부에도 관심 없었고 운동에도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도 관심이 없었다. 쉬는 시간에 유일하게 자리에 꼬박 앉아있는 유별난 아이였다. 덕분에 재걸의 운동신경은 같은 나이의 다른 남학생들보다 현저히 떨어졌고 성적은 중간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말수도 적었고 다른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도 없었다. 때문에 재걸은 친구가 없었고 없어도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자발적 아웃사이더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아이였다.

 


“그냥 일반적으로 하는 면담이야. 긴장 같은 거 안 해도 돼.”

“네.”

“학교생활은 어떠니?”

“맨날 똑같죠, 뭐.”

“그래. 친구는 많이 사귀었니?”

“네, 뭐..”

 


담임이고 부모님이고 항상 묻는 것들이었다. 재걸은 적당히 넘겼다. 모든 게 귀찮았다.

 


“학교에 오기 싫었다거나 그런 날은 없었니?”

 


이상한 질문이었다. 재걸은 분명 성적에 관련된 면담을 하는 줄 알고 담임의 책상 앞에 앉은 거였다. 면담을 끝낸 아이들은 분명히 성적에 대한 면담이라고 했었다. 재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답했다.

 


“네.”

“괴롭히는 친구들은 없고?”

“네, 없어요.”

“그래 그럼.. 됐다. 호종이 면담해야하니까 선생님 책상으로 오라고 전해줄래?”

“..네.”

 


이게 끝인가? 재걸은 미심쩍었지만 가라고 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반장인 호종의 자리로 향했다. 호종은 학기 초에 거의 만장일치로 반장이 된 일명 엄친아였다. 재걸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고 여자애들이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호종은 전교권에서 놀 정도로 공부를 잘했고 또 열심히 해서 선생들에게 예쁨 받는 학생이었다. 운동을 볼 줄 모르는 재걸은 잘 모르겠지만 호종은 점심시간마다 친구들과 농구나 축구를 할 정도로 운동도 좋아했다. 그리고 남자가 봐도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소문으로는 집도 꽤 부자라는 소리가 있었다. 한 마디로 다 가진 아이였다. 워낙 시선을 끄는 아이라 가만히 있어도 이런 저런 소식이 귀에 들렸다. 재걸은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맨 앞자리 가운데에 있는 호종의 자리로 가서 책상을 툭툭 쳤다. 필기에 집중하던 호종은 고개를 들었다.

 


“담임이 면담한다고 오래.”

 


호종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호종이 펼치고 있던 책은 윤리 책이었다. 바로 전 시간이 윤리 시간이었던 걸 재걸은 기억해냈다. 윤리 선생은 수업시간에 이상한 짓을 많이 하는 유별난 선생이었다. 그러나 수업 외로 재미있는 점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윤리 선생을 좋아했다. 그의 수업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늘은 인권에 대한 걸 배울 거예요. 2차 세계 대전에서 인권이 어느 정도로 유린이 되었는지 왜 인권은 지켜줘야 하는지를 배울 거예요. 히틀러라는 사람 이름 들어본 적 있죠?”

“네.”

“히틀러는 1차,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의 총통이었어요. 대통령보다 더 권력이 강했죠. 히틀러를 보좌하던 부하들 가운데 괴벨스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가 매체를 통해 어떻게 국민들을 현혹시켰는지 잠깐 영상을 볼 텐데 그 전에 42페이지를 보세요.”

 


윤리 선생이 보라고 한 교과서 페이지의 귀퉁이엔 질문이 하나 있고 답을 적는 괄호 칸이 있었다.

 


“오른쪽 귀퉁이에 ‘본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이라는 물음이 보이죠? 자기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한 번 적어보세요.”

 


재걸은 1초도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답을 적었던 걸 기억했다. 호종이 펼치고 있던 페이지가 바로 그 42페이지였다. 호종에게 담임의 말을 전하면서 우연찮게 호종이 써넣은 답을 보았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

 


재걸은 그 답을 보고 과연 전교권에서 노는 모범생답다고 생각했다. 교과서 지문에 그어진 밑줄과 부연설명, 선생의 판서를 보고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필기를 보고 재걸은 내심 감탄했다.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필기였다. 마치 강박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담임의 말을 전하고 재걸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윤리 책을 폈다. 42페이지 오른쪽 귀퉁이에 삐뚤빼뚤 적어 넣은 자신의 답은 ‘어둠.’ 이었다.

 

 

재걸은 따가운 햇볕이 비추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억지로 들리는 정신과 상담실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불친절한 건물의 6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항상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재걸의 표정은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일찍 왔네요, 재걸 군.”

“..안녕하세요.”

 


익숙한 의자에 앉자마자 재걸은 시선을 벽에 걸린 시계로 돌린다. 매주 수요일, 상담 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다. 상담사가 늘어놓는 질문과 말들은 귓등으로 흘린다. 재걸은 늘 그렇게 그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학교생활은 어때요?”

“좋아요.”

“공부는 어때요? 이제 2학년인데, 진도는 잘 따라가고 있나요?”

“네. 상위권이에요.”

 


거짓말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재걸은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기본적인 머리는 있는지 공부를 하지 않아도 중간은 갔지만 재걸은 그 중간이라도 가는 성적에도 관심이 없었다. 상담사가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재걸의 성적을 묻는다면 단박에 들통 날 거짓말이었으나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었다. 재걸은 그저 견디고 있는 거였다.

매주 이어지던 늘상 묻는 질문들과 답이 오갔다. 상담사는 펜으로 무언가를 써내려가던 노트를 닫았다. 더 건질 게 없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 으레 그렇게 해왔듯이 뜸을 들였다.

 


“시간이 다 됐네요.”

“......”

“마지막 질문이에요. 무언가 기억나는 게 있나요?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이라던가.”

“없어요.”

 


재걸은 단칼에 대답했다. 그럴 때마다 상담사는 매번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재걸은 잘생겼다. 순한 외모였지만 이상하게 단호하게 대답할 때 재걸의 표정은 시퍼런 칼날처럼 서늘했다. 상담사는 작게 한숨을 쉬며 다른 화제를 꺼냈다.

 


“재걸 군은 뉴스를 보나요?”

“부모님이 보면 같이 보곤 해요.”

“오늘 아침에 뉴스를 봤는데 아동 유괴사건이 또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

“끔찍하죠. 그냥 유괴도 아니고 연쇄 유괴라니. 벌써 세 명 째라고 하는 걸 보니 범인은 참 나쁜 사람인 것 같아요.”

 


재걸은 말이 없었다. 딱히 할 말이 없는 듯 보였다. 다시 상담실 벽에 걸린 시계로 눈을 돌렸다. 벌써 앉은 지 55분 째였다. 오늘도 잘 견뎌냈다. 그러나 처음으로 재걸은 입을 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

“왜 그러죠?”

“아무것도 아니에요.”

 


요새 이상한 꿈을 꿔요. 라는 말과 유괴되었다는 그 애들은 이미 죽었을 거예요. 내가 확신해요. 라는 말을 동시에 하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다. 하지만 재걸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대로 가방을 챙겨 성의 없이 인사를 하고 상담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한 번도 상담사가 그 어떤 질문을 던지든 무언가 말할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근데 오늘은 좀 많이 이상했다. 오후 5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는데도 햇볕은 쨍쨍했다. 누군가에겐 따뜻할 햇살이 재걸에겐 그저 따갑기만 했다. 무언가 이상해지고 있었다.

 


 

플렘와치 찌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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