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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플렘와치] 독 02.


02.

 

 

뉴스란 TV 프로그램은 큰 사건 하나가 터지면 으레 하이에나가 간만에 먹이를 찾은 듯 그 사건에 대해서만 달려들듯 보도하기 마련이다. 연쇄 유괴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재걸은 아침마다 세세하게도 나오는 뉴스에 구역질을 느꼈다.

 


“지난 16일 유괴된 것으로 알려진 이윤호 군은 현재 만 7세로 주교동에 위치한 운현초등학교 2학년으로 16일 오후 5시 ㅁㅁ아파트 근처 놀이터에서 놀던 중 납치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말했습니다. 오늘 날짜인 19일까지 범인에겐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으며 범인의 인상착의나 목격자 또한 나오지 않아 유괴된 이윤호 군의 부모는 애타는 마음만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앵커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며 이어지는 영상에 다시 무거운 목소리를 냈다. 영상은 6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들판에서 뛰어노는 영상이었고 이윽고 좀 더 자란 모습의 사진이 화면에 나왔다. 앵커가 말하던 가장 최근에 유괴된 아이인 듯 했다. 재걸은 며칠 전과 같이 아침밥을 먹으며 뉴스를 보고 있었다. 앵커의 말은 앵커의 목소리만큼이나 귀에 속속 들어왔다. 속이 불편했다.

 


“..그만 먹을래요.”

“왜, 더 먹지.”

“싫어요. 안 들어가요.”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괜스레 말투가 퉁명스러워졌다. 당연하게도 그 말에 아빠는 재걸은 나무랐다.

 


“아침부터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니.”

“다 먹었어요. 학교 갈게요.”

“조재걸.”

“여보.”

 


재걸은 가방을 멨다가 다시 의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화난 표정의 아빠를 보았다. 재걸의 표정엔 아무것도 없었다. 재걸이 다시 가방을 내려놓자 재걸의 아빠는 엄마한테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재걸의 부모는 재걸에게 약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만 재걸의 부모는 좀 달랐다. 재걸의 부모는 마치 재걸이 둘의 약점을 틀어쥐고 있는 듯이 행동하곤 했다. 말을 할듯 말듯 하면서도 내뱉지 못하는 남편을 재걸의 엄마는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

“할 말 없으시면 저 학교 갈게요.”

“조심히 갔다 와, 재걸아.”

 


재걸은 엄마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가방을 메고 현관으로 향하던 재걸은 문득 뒤를 돌았다. 그리고 무미건조한 말투로 툭 내뱉었다.

 


“앞으로 아침에 밥 먹을 땐 뉴스 틀지 마세요.”

 


사춘기가 온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이 아침에 얘기할 수 있는 범위의 말이었지만 재걸의 부모는 그 말이 마치 재걸이 곧 자살할 거라는 말을 들은 듯이 반응했다. 그리고 그 반응을 본 재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현관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

 


 

호종은 점심시간에는 넘치는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바로 운동장으로 나가 축구를 하거나 농구를 했다. 운동은 호종이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이유 중 하나였다. 철모르는 여자애들은 공부도 잘하고 잘생기고 친구도 많은 애가 운동마저 잘한다고 호종이 골을 넣거나 교복 소매를 걷고 농구를 할 때마다 시끄럽게 꺅꺅거리곤 했다.



“아, 존나 힘들어.”

“강찬용 물 있냐?”

“물 맡겨놨냐? 그런 거 안 키운다.”

“아, 수돗물 비린내 나서 싫은데.”

“하여간 생긴 대로 깔끔 떠신다, 또.”

“그러는 지는.”



호종은 숨을 훅 내뱉으며 세수를 했다. 찬용은 스탠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호종의 어깨를 툭툭 쳤다.



“왜?”

“쟤는 누군데 맨날 저기 누워서 자고 있냐.”

“누구.”



호종은 찬용이 가리키는 스탠드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과 키가 비슷한 남자애가 누워있었다.



“우리 점심 때 나와서 운동 할 때마다 나와서 자고 있잖아.”

“언제 그런 건 또 봤대.”

“병신아 맨날 보이는데 못 보는 게 멍청이 아님?”

“지금 나더러 멍청이랬냐?”



찬용은 호종을 놀리며 킬킬 웃었다. 5월의 햇살은 따뜻함을 넘어서 따가웠다. 남자애는 그런 햇볕 아래에서 잘도 자고 있었다.



“희한한 애네.”

“그러게.”



찬용은 그렇게 대답하고 곧 다른 화제를 입에 올리며 농담을 했다. 호종도 그 화제에 맞추어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호종은 같이 운동을 뛰었던 친구들 몰래 스탠드에 누워있는 남자 아이에게 시선을 한 번 더 던졌다. 누워있는 옆 얼굴이 낯익었다. 호종은 그 애가 누군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야, 나 쟤 누군지 알 것 같어.”

“누군데?”

“우리 반.”

“너네 반 누구.”

“몰라, 걍 우리 반인 것만 앎.”

“넌 반장이라는 새끼가 너네 반 애 이름도 모르냐?”

“모를 수도 있지. 알아야 돼?”

 


둘은 다시 투닥거렸다. 수업을 알리는 종이 치기 몇 분 전이었는데도 스탠드에 누워있는 그 애는 다른 세상에 있는 듯 미동도 없었다.

 


호종은 곧 종이 치겠다며 찬용을 재촉하면서 스탠드 계단을 뛰어올랐다. 스탠드에 누워있던 재걸은 자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곧게 누워서 눈만 감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자꾸만 아침에 보았던 뉴스 내용이 떠올랐다.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데도 전원을 끌 수 없는 비디오마냥 자동으로 재생됐다. 재걸은 얼굴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토할 것 같아. 누워있는데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운동장에서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던 아이들이겠거니 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들어맞았다. 낮은 목소리가 이호종-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저께 우연히 윤리 교과서에 적은 은밀한 답을 보았던 그 애 같았다. 학교에 관심이 없어도 이호종이 선생님들에게 예쁨을 받고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고 선망의 대상이란 것은 절로 알게 되었다. 누구라도 한 달만 호종과 같은 반 생활을 한다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호종은 그런 애였다.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소문과 관심의 가운데에 서 있는. 발소리와 함께 높은 목소리의 남자애가 스탠드를 뛰어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호종은 재걸이 누운 곳과 가까운 곳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재걸은 어렵지 않게 확 풍기는 호종의 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자마자 재걸은 표정을 잔뜩 찌푸렸다. 호종에게서 풍겼던 땀 냄새가 지독하거나 그래서가 아니었다. 그 애의 체취는 왕성한 생명력 그 자체였다. 재걸에게선 발견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두 개의 발소리가 지나간 후 재걸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재걸은 멍하니 발소리가 지나간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왜 저절로 호종이 사라진 쪽으로 시선이 가는지 모를 일이었다.

 


수업이 다 끝나고 재걸은 언제나 그렇듯 홀로 가방을 챙기고 그 어떤 아는 척도 친근함도 없이 실내화를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지독하게 익숙한 것이었다. 아마도 이런 생활이 졸업할 때까지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 오늘 아무 약속도 없다며! 노래방 가자, 응?”

“집에 가서 공부해야 돼.”

“매일 공부한다고 나 버리고 갔잖아. 오늘만 놀면 안 돼? 응? 또 언제 놀아~”

“오늘따라 왜 이렇게 어리광이야. 꼭 거길 가야돼?”

“여고 애들이랑 약속 다 잡아놨단 말이야. 너 소개시켜준다구!”

“그걸 왜 이제 말해.”

“그럼 말하면 간다고 했겠어, 니가?”

“..아무튼 오늘은 안 돼. 주말에 가.”

“주말 좋아하네. 주말엔 과외 있다며!”

 


응석부리는 소리와 달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신발을 갈아 신는 호종의 팔에 매달린 여자애가 보였다. 여자친구인 듯 했다. 재걸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여자친구도 있구나..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생물이라 나와 다른 인생을 보내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과 비교해보게 된다. 누가 보아도 호종은 같은 또래의 남학생이라면 누구나 닮고 싶고 살고 싶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공부도 잘 했고 운동도 잘했으며 여자애들에게도 인기가 많았고 예쁜 여자친구도 있었고 친구도 여럿이었다. 얼핏 들은 소문에 의하면 집도 꽤나 부자라서 메고 다니는 가방도 비싼 가방이 많다는 소리도 있었다. 어딜 봐도 모자람이 없는 일상이었다. 재걸은 덤덤하게 평범한 일상 중에서도 최상위급에 속하는 일상이라고 생각했다. 자신과 비교했을 때 호종은 윤택한 삶을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딱딱하고,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자신의 생활보다는 훨씬 활기차보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아까 호종이 재걸이 누워있는 스탠드를 지나갈 때 맡았던 체취로 인해 더욱 굳어진 상태였다. 저런 걸 완벽하다고 하겠지, 사람들은. 그러나 재걸은 지나치게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재걸은 지나친 완벽은 불안정하다는 사고를 거쳐 위화감을 불러냈다. 복잡한 얘기 같지만 실은 간단했다. 완전해 보이는 어떤 한 인간에 대해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그래도 저 사람은 뭔가 다른 문제가 있지 않을까? 가정에 문제가 있을 거야, 실제론 괴팍한 성격일지도 몰라. 하는 종류의 모함과 같은 종류의 사고였다. 재걸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는 자신의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더 이상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듯 도망치듯 신발장 앞에서 벗어났다.

 


“올해 4월에 처음으로 유괴된 것으로 추정되는 김태환 군은 만 8세로 관악구 신성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3학년 학생이었습니다. 경찰은 태환 군이 연쇄 유괴 사건의 첫 피해자로 지목되는 이유는 최근 유괴된 이윤호 군과 같이 오후 4시 경 집 근처 놀이터에서 유괴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태환 군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태로 이윤호 군과 마찬가지로 범인에게서 그 어떤 접촉도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아침과 마찬가지로 피해아동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뉴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재걸은 유괴 사건에 대한 소식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거실 TV에서 흘러나오는 앵커의 목소리는 재걸의 방까지 쉽게 흘러들어왔다. 재걸이 학교가 파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피곤하다고 둘러대니 아빠와 엄마는 재걸에게 그 어떤 터치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걸은 불편하고 메스꺼운 기분이 들었다. 왜 자꾸 속이 울렁거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재걸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재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으, 으으...”

 


‘이름이 뭐라고 했지? 너는 먼저 내게 온 아이처럼 아주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구나.’

‘재, 재걸이에요..’

‘무슨 재걸이니?’

‘조재걸이요..’

‘그래, 재걸이 착하기도 하지. 먼저 온 ...에게 인사하렴.’

‘...무서워요. 집에 보내주세요.’

‘내가 ...에게 인사하라고 하지 않았니?’

 


재걸은 얼굴을 찡그리며 울기 시작한다. 무섭다.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다. 그러나 어린 재걸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다.

 


‘자, ...에게 안녕~ 이라고 해보렴. ...야, 네가 먼저 인사해보렴.’

 


익숙한 얇은 목소리가 들린다.

 


‘...아, 안녕.’

 


재걸은 너무나 무서워서 아이가 건네는 인사를 받아주지 못한다. 그럴 겨를이 없다. 재걸은 결국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집에,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보내주세요. 엄마가 보고 싶어요... 흑, 흑... 엄마...’

‘내가 허락하지 않았는데 멋대로 울다니, 재걸이는 나쁜 아이로구나.’

‘어엉엉엉, 엄마, 엄마!!! 엄마아아...’

‘...야, 내가 나쁜 아이는 어떻게 된다고 했지?’

 


겁에 질린 목소리가 겨우 입술을 뚫고 나온다.

 


‘...벌을 받는다고 했어요..’

‘그렇지, 나쁜 아이는 벌을 받아야지. 재걸이는 벌을 받아야 할 것 같구나.’

‘엉엉엉엉, 살려주세요... 싫어, 만지지 마!!!!!!’

 

‘아아아아악!!!!!!’

 


기분 나쁜 목소리와 겁에 질린 목소리가 이명이 되어 귓속에 마구 퍼진다.

 


“헉, 헉, 허억...”

 


재걸은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채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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