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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플렘와치] 독 05. 05. “아 이호좆 새끼 공 받으라니까 왜 또 저래?”“야 됐고 나한테 패스해.” 찬용은 혀를 끌끌 차며 공을 받으러 오는 상면에게 패스했다. “축구는 네가 먼저 하자고 했으면서 왜 멍때리냐?”“갑자기 하기 싫어졌어.”“아오, 변덕 쩌는 새끼.” 호종의 시선은 스탠드로 가 있었다. 자연스레 찬용의 시선도 스탠드로 향했다. 여름의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스탠드엔 일상처럼 재걸이 누워있었다. “쟤.. 내가 말했던 걔 아니냐?”“어. 그런 것 같다.”“그러면 그런 거지 그런 것 같다는 뭔 개소리야.”“나 이제 쟤 이름 알아.”“올.. 뭔데?”“..조재걸.” 호종은 집요하게도 누워있는 재걸을 보았다. 그런데 그 전의 일상적으로 평온하게 잠들어있던 재걸의 모습과 오늘의 모습은 달랐다. 재걸은 나쁜 꿈이라도 꾸는지.. 더보기
[플렘와치, 세이브꿍, 카인제파] 센티넬버스AU+최종병기그녀 05 에피소드 5. 맹목2 누리는 2년 넘게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최전방에서 볼 것과 보지 못할 것을 너무 많이 봐왔다. 전담하고 있던 첫 센티넬인 종인이 더 이상 못하겠다며 전역을 할 때도, 상수가 노철과 함께 수도방위군부로 옮겨 오래 전부터 싸워왔던 전우들이 전장에서 사라지는 걸 보는 누리의 눈은 담담했다. 이제 고작 1년 몇 개월을 넘긴 재민으로선 누리가 무슨 심정으로 쓰러지고 사라지는 것들을 봐 왔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누군가 죽어나갈 때마다, 자신들보다 훨씬 어리고 생생하던 소년병들이 피범벅이 되어 들것에 실려 올 때마다 누리의 표정은 담담했다. 재민은 그런 누리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가끔, ...아니. 매번 그러고 싶었다. 연구소 군인들이 와서 재민의 센티넬로서의 능력이 어떻게 발현이 .. 더보기
[플렘와치] 독 04. 04. 심연A-byssos은 그리스어로 '바닥없음'이라는 뜻으로, 아오리스트aoriste가 뜻하는 무한과 같다. 시時의 무한. 더 구체적으로는 대양의 가장 깊은 곳, 태양 빛이 더 이상 닿지 않는 곳부터를 심연이라 부른다. - 파스칼 키냐르,『심연들』사람들은 어떤 무시무시한 심연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곳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대부분의 심연은 실패라던가, 이별이라던가, 무력감 같은 것일 터였다. 그러나 나는 내가 심연이었다. 내 자신이 빛이 들어올 수 없는 저 밑바닥이었다. 상담을 끝내고 돌아오자마자 반기는 것은 걱정이 줄줄 흘러내리는 엄마의 얼굴이었다. “상담선생님한테 전화 왔어. 왜 그래, 재걸아. 무슨 일 있었니? 엄마한테 말해봐.”“..쉬고 싶어요.”“재걸아. 문제가 뭔지 알아야 나아지지.. 더보기
[플렘와치, 세이브꿍, 카인제파] 센티넬버스AU+최종병기그녀 04 에피소드 4. 맹목 누리는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건 호종 때문이기도 했고 재민 때문이기도 했고 병준과 영진 때문이기도 했다. 누리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이를 득득 갈았다. 이런 망할 놈들, 허우대 멀쩡한 놈들이 사고만 진탕 치고 다니고 말이야. 물론 그 중에서 재민은 제외였다. 누리는 자신에게 닥친 여러 고난유발자들을 냉정하게 줄 세웠다. 가장 골치가 아픈 놈은 이호종이었다. 벌써 애플럼 분지에서의 게릴라 전투로부터 이틀이나 지났지만 호종은 깨어날 기미도 안 보였다. 이런 미련한 놈. 센티넬의 능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다루기 어려워지고 센티넬 본인의 몸에 가는 타격도 크기 마련이다. 그래서 강한 센티넬들을 보좌하는 가이드들의 신체에도 타격이 작지 않았다. 이호종은 분명 그딴 건 생각도 하지 않고 달려들.. 더보기
[플렘와치, 세이브꿍, 카인제파] 센티넬버스AU+최종병기그녀 03 에피소드 3. The Monster is Watching You 그 얼굴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매일 교전이 끊이지 않는다는 동부 전선에는 어울리지 않는 예쁜 얼굴. 조재걸의 얼굴. 한 눈 팔지 말자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생각이 물 위에 떠오르는 튜브 마냥 둥둥 떠오르는 것은 호종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 조재걸이란 사람 봤다.”“괴물을요? 용케도 보셨네요.”“괴물 아니고 사람이던데.” 그 말을 뱉는 호종의 표정이 약간 살벌하게 보여 호성은 살짝 쫄았다. “그래서 본 소감은 어떠셨습니까?” 호성은 웃는 낯으로 물었다. “그냥...” 호종은 시선을 들어 먼 허공에 던졌다. 소감이 어땠더라. 그 사람 얼굴 밖에 기억이 안 나. ..아, 그리고 참 말랐던 몸도. “얼굴이 지나치게 예쁘던데.”“그 분.. 더보기
[플렘와치, 세이브꿍, 카인제파] 센티넬버스AU+최종병기그녀 02 에피소드 2. 센티넬과 가이드 재민의 일은 전투에 나가는 군인들을 보조하며 부상을 입는 센티넬과 군인들을 의무소에 보내고 그걸 기록하는 일이었다. 보통 일지를 쓰면 1시간이면 능히 끝낼 일을 재민은 2시간이 넘도록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 이거 빨리 끝내야 하는데...” 재민이 일에 집중 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하나는 누리가 자꾸만 저와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자꾸만 다른 사람들이 중얼거리거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이유야 언제든 누리에게 찾아가 얘기 좀 하자고 하면 될 일이었지만 두 번째 이유는 재민 자신도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귓가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 놀라서 고개를 들면 그 소리는 어느 샌가 감쪽같이 사라져있었다. 머리.. 더보기
[플렘와치, 세이브꿍, 카인제파] 센티넬버스AU+최종병기그녀 01 에피소드 1. 동부 전선에는 괴물이 산다 호종은 달리는 기차 안에서 자꾸만 헛기침을 했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전선에 발령이 난 것 때문에 긴장이 되어 참을 수가 없었다. 원래는 동기인 형우가 발령을 받은 것으로 알았지만 형우는 서부 전선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 의사가 받아들여져 호종이 대신 동부 전선으로 발령이 나게 됐다. 사실 어찌 되든 상관은 없었다. 호종은 빨리 전선에 투입이 되고 싶었다. “아 모자가 삐뚤어졌네...” 장교 모자의 각도를 똑바로 맞춘 호종은 다시 숨을 고르며 기차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호종이 살고 있는 국가는 총통이 존재하는 군부국가였다. 때문에 군인들은 존경을 받았고 군인이 되면 안정적인 급여와 보장된 노후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사관학교에서 고된 교육을 받.. 더보기
[플렘와치] 독 03. 03. 나는 칼 위에서 한 발로 춤추고 있었다. 호종의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가방을 챙기고 아버지가 학교 근처까지 데려다준다. 교실에 들어가면 시간표를 확인하고 1교시에 배울 과목을 예습한다. 선생님이 칠판에 쓰는 필기를 꼬박 공책이나 교과서에 베껴 쓰고 쉬는 시간에도 화장실을 가지 않으면 그대로 앉아 간단하게 복습을 했다. 그나마 가끔 옆 반인 찬용이 놀러오면 몇 마디 수다를 떨곤 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점심을 먹었고 학업 스트레스를 푼다는 핑계로 운동장에 나가 운동을 했다. 학교생활 중에 존재하는 유일한 낙이었다. 전에는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운동하는 것과 야자시간 전에 여자친구인 연주를 만나는 것이 낙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낙 중 하나는 낙이 아니게 되어.. 더보기
[플렘와치] 독 02. 02. 뉴스란 TV 프로그램은 큰 사건 하나가 터지면 으레 하이에나가 간만에 먹이를 찾은 듯 그 사건에 대해서만 달려들듯 보도하기 마련이다. 연쇄 유괴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재걸은 아침마다 세세하게도 나오는 뉴스에 구역질을 느꼈다. “지난 16일 유괴된 것으로 알려진 이윤호 군은 현재 만 7세로 주교동에 위치한 운현초등학교 2학년으로 16일 오후 5시 ㅁㅁ아파트 근처 놀이터에서 놀던 중 납치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말했습니다. 오늘 날짜인 19일까지 범인에겐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으며 범인의 인상착의나 목격자 또한 나오지 않아 유괴된 이윤호 군의 부모는 애타는 마음만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앵커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며 이어지는 영상에 다시 무거운 목소리를 냈다. 영상은 6살쯤 되어 보.. 더보기
[플렘와치] 독 01. 독 01. 그게 날 이끌던 걸 느낀 적 있지 분명그 시작을 기억해 “지난 5월 23일에 이어 3일 전 또 다시 연쇄 유괴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유괴된 피해 아동은 서울 중구 주교동 ㅁㅁ아파트에 살던 7세 이윤호 군으로..” 식탁에 앉아 식사를 챙겨주던 엄마가 안타까운 얼굴로 기겁을 하며 탄식했다. “어머 세상에 끔찍해라.. 또 유괴 사건이 일어났나봐요.”“그러게나 말이야. 이번이 내가 기억하기론 세 번째 같은데.”“없어진 아이들 부모 속이 말이 아니겠어요.” 세상에 그렇게 끔찍할 수 없다는 얼굴로 엄마는 여전한 움직임으로 재걸의 밥그릇 위에 생선살을 발라서 놔주었다. 재걸은 모래를 씹는 표정으로 밥알을 꾸역꾸역 씹어 넘겼다. 아빠와 엄마의 대화가 불편했다. “재걸아.”“네, 아빠.”“아침부터 밥상에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