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 센티넬과 가이드
재민의 일은 전투에 나가는 군인들을 보조하며 부상을 입는 센티넬과 군인들을 의무소에 보내고 그걸 기록하는 일이었다. 보통 일지를 쓰면 1시간이면 능히 끝낼 일을 재민은 2시간이 넘도록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 이거 빨리 끝내야 하는데...”
재민이 일에 집중 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하나는 누리가 자꾸만 저와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자꾸만 다른 사람들이 중얼거리거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이유야 언제든 누리에게 찾아가 얘기 좀 하자고 하면 될 일이었지만 두 번째 이유는 재민 자신도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귓가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 놀라서 고개를 들면 그 소리는 어느 샌가 감쪽같이 사라져있었다.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재민은 일지를 적어 내려가던 펜을 책상 위에 탁, 소리 나게 놓았다. 그리고 때를 맞춘 것처럼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십시오.”
“나야.”
“아, 누리 형.”
재민은 얼굴이 빨개지려고 하는 것을 애써 참았다. 내가 형 생각 하는 걸 알았나.
“표정이 왜 그래?”
“아니, 그냥..”
“너 나한테 할 말 있지.”
물어보는 게 아니었다. 누리는 종종 어떻게 재민의 마음을 알았는지 확신하듯이 말하곤 했다.
“어떻게 알았어?”
“내가 너랑 몇 년을 봤는데 그것도 모르겠냐.”
“..형 진짜 그만 둘 거야?”
누리가 가이드로서 군에 들어온 건 3년 전이었다. 그리고 재민은 누리의 추천으로 부대에 2년 전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둘이 알고 지낸 시간은 그것보다 더 길었다. 애초에 재민이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알고 지냈으니. 그런 누리가 자신을 내버려두고 전역할 생각이라는 걸 규민에게서 들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재민의 마음은 복잡했다. 서운하기도 했고 잡고 싶기도 했고 나는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화를 내고 싶기도 했고 구차하게 매달리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재민은 그 중 어느 것도 하지 못했다.
“오규민이 말했지?”
“그럼 누구겠어.”
규민은 새로 들어온 혈기왕성한 센티넬이었고 누리를 무던히도 좋아하는 아이였다. 입만 열면 누리 형이 어쩌고저쩌고.. 나이 차이도 크게 나는지라 재민과 누리 둘 다 규민은 귀여워하던 차였다.
“그냥, 좀 지치기도 했고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다 놓았다는 듯이 말하는 누리가 재민은 약간 원망스러웠다. 그럼 나는? 형 그럼 나는. 그러나 이번에도 재민은 누리에게 어떠한 말도 건네지 못했다.
“신청서 넣으면 다음 주면 연락 주겠지, 뭐. 그동안 일하던 거 정리해야 할 테고.”
“.....”
누리는 재민의 표정을 살피다가 툭, 던졌다.
“안 잡냐?”
“뭐?”
“그만둔다는데 나 안 잡냐고.”
재민은 미간을 찡그렸다. 저럴 때만 돌직구지. 막상 전역할 거라는 생각이란 건 다른 사람한테 듣게 하고.
“형 그럴 때마다 좀 짜증나는 거 알아..?”
“네 표정을 보니까 그런 것 같네.”
“아, 진짜..”
“미안.”
누리는 말문이 막힌 재민에게 이어서 말했다.
“나 가면 네가 많이 힘들겠네.”
“그걸 이제야 생각했어?”
“그러게.”
“그렇게 미안하면 가지 말던가.”
이게 재민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억지였다. 차마 날 두고 가지 말라고 매달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기엔 그 동안 누리가 어떻게 조금씩, 죽어가는 것처럼 지쳐갔는지 옆에서 너무나 가까이서 보아왔다.
“더 매달려봐.”
“아씨, 형 짜증나. 그냥 가버려.”
누리는 하하하, 하며 소리나게 웃었다. 하여간 귀엽다니까. 여유로운 표정으로 누리는 재민에게 말을 건네고 방을 나갔다.
“너무 시무룩해하지 말고. 알았지?”
재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민의 머릿 속에선 형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만두지 말았으면 좋겠다. 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다. 내게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
누리는 재민의 방을 나와서 호종이 기다리는 교육장으로 걸었다.
“안녕.”
“결전! 이 호 종!”
“야, 귀 아프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나한테 교육 받을 땐 충성 안 해도 돼.”
“네..”
“이름이 이호종이라고?”
“네, 이호종입니다.”
“싱크로율 빼면 다른 건 다 최고점이네?”
“네...”
싱크로율 얘기가 나오자 호종은 다시금 우울해졌다. 그걸 알아차린 누리는 대수롭지 않은 거라며 호종을 다독였다.
“너무 주눅 들지 않아도 돼. 나도 처음 왔을 때 싱크로율 별로였어.”
“중사님 싱크로율은 어땠습니까?”
“나? 처음에 한 70 정도였나.”
호종은 입술을 비죽거렸다.
“에이, 그래도 저보단 훨씬 높으시지 말입니다.”
“다른 센티넬들이랑 평균적으로 감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랑 진짜로 딱 맞는 센티넬이 나타나면 걔랑만 잘 맞으면 장땡이야. 60 넘으면 합격점이니까 차차 늘려가면 돼.”
“네.”
호종은 누리에게서 가이드로서 기본적인 것들을 배워나갔다. 재밌는 내용일 때도 있었고 다소 지루할 때는 하품을 몇 번씩 하기도 했다. 교육이 조금 늘어질 때쯤 호종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저기, 중사님.”
“어. 뭐 질문할 거 있나?”
“이건 교육 관련은 아닙니다만..”
“말해.”
“동부 전선에 괴물이 산다는 얘기를 사관학교에서부터 종종 들었습니다.”
“.....”
호종의 말을 들은 누리의 표정은 읽을 수가 없었다. 약간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얼굴을 금방 풀며 누리는 대답했다.
“뭐.. 괴물 같은 애가 살긴 하지.”
“인간병기라고 들었습니다.”
“그냥 인간이야.”
“그렇습니까?”
“물론 그 애 몸에 병기가 들어있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지.”
“.....”
괴물을 본 적도 전투에 나가본 적도 없는 호종은 동부 전선에 숨 쉬며 반란군과 적군을 공포에 떨게 한다는 괴물이 궁금했다. 그 표정을 읽은 누리는 씁쓸한 얼굴을 하며 호종에게 제안했다.
“보러 갈래? 그 애.”
“누구 말입니까?”
“동부 전선의 괴물.”
호종은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가슴에 손바닥을 대보니 정말로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진짜.. 이게 뭐라고. 누리를 따라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걷다보니 넓디넓은 훈련장이 나왔다. 상사 계급 이하의 병사들은 출입이 금지되어 어쩔 수 없이 멀리서 보아야 했지만 어느 정도 사물이나 사람의 윤곽을 구분할 수는 있는 거리였다.
“마침 시간이 딱 맞네.”
“무슨 시간 말씀입니까?”
“조재걸 훈련 시간.”
“?”
“걔 이름이 조재걸이야.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병기. 동부 전선에 산다는 괴물.”
호종은 고개를 돌려 넓은 훈련장 가운데로 걸어오는 사람들을 보았다. 둘은 키가 큰 장병이었고 그 앞에 걸어오는 작은 키의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장병들과 달리 얇은 셔츠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 훈련장 가운데에 선 그 남자에게 장병 둘은 경례를 하고 바로 사라졌다. 호종은 단순하게 감탄했다. 와, 이 넓은 훈련장을 혼자서 쓰네. 그리고 시선을 올려 그 애의 얼굴을 보았을 때 호종은 놀랐다.
..뭐야,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잖아. 엄청 예쁘게 생겼다.
가만히 서 있는 그 애의 얼굴을 충분히 바라본 호종은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려 누리에게 말했다.
“이제 교육하러 가고 싶습니다.”
“더 안 보고?”
“평범한 사람이네요.”
의도치 않게 다나까가 아닌 말이 튀어나왔지만 누리는 지적하지 않았다. 조금 침묵하다 그는 그래, 교육장으로 가자. 라고 말했다. 호종은 앞서 걸었다. 다행히 훈련장에서 교육장으로 가는 길은 쉬웠다. 호종이 멀어지는데도 누리는 여전히 훈련장 가운데에 서 있는 재걸을 보고 있었다. 호종이 등을 돌린 동시에 재걸의 등에서 살점을 뚫고 나오는 금속날개가 보였다. 셔츠는 금세 너덜너덜해졌다. 한두 번 봐온 광경이 아니었지만 언제나 날개가 살을 찢고 나오는 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누리는 점점 더 멀어지는 호종을 뒤따라 걸으며 호종이 재걸의 저런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형, 누리 형이 이제 저랑 교감 더 안 하고 새 가이드 교육하고 있는 거 알아요?”
“너 누가 해요체 쓰래.”
“누리 형이 괜찮다고 했어요.”
“난 별로 안 괜찮은데.”
“적응하면 되잖아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누리 형 진짜 전역한대요?”
규민이 왁왁거리는 소리가 재민의 귓가에 시끄럽게 울린다. 아 얘는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나도 미치겠는데. 그러나 재민은 착각하고 있었다. 규민이 말한 것은 고작 세 마디였고 재민은 그것보다 더 시끄러운 규민의 생각도 함께 듣고 있었다. 그러나 재민은 자신이 그런 상태라는 것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야, 너 너무 시끄러워. 잠시만 조용히 해봐.”
“저 별로 말 안 했어요!”
“합죽이가 됩시다. 합.”
규민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재민의 말을 들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재민의 귓가엔 규민이 불평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이게 뭐지. 나 왜 이러지..?
“형 왜 그래요?”
“나 잠깐만.. 몸이 좀 이상한 것 같아.”
그걸 깨달은 동시에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 그 와중에도 규민의 걱정스러운 생각이 끊임없이 재민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규민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나가는 호성을 불렀다.
“호성이 형! 이리 와 봐요! 이 중사님이 이상해요!”
“무슨 일인데?”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은 재민의 곁에 호성이 오자 재민의 머리는 더욱 깨질듯이 아파왔다. 호성의 생각까지 함께 흘러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씨발.. 너무 시끄러워..”
“중사님 저희 아무런 말도 안 했어요.”
“너네 말이 아니라.. 너네 생각이 너무 시끄러워...”
“네?”
“뭐라고요?”
“이 중사님 그게 무슨 소리에요.”
재민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두통은 가시지 않았다. 호성과 규민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마지막으로 재민은 정신을 잃었다.
“이게 말이 돼?!”
누리가 저답지 않게 소리를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 앞에 선 군의관도 당황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저희도 이게 이렇게 늦은 나이에 발현되는 건지 처음 알았습니다.”
“너네 의사에 과학자지.”
“예, 그렇습니다.”
“과학자들 주제에 가능성 하나도 염두에 두지 못하나?”
“죄송합니다.”
누리 앞에 선 군의관은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누리 본인도 이게 내가 사과 받아야 할 일인지 의문이었지만 치미는 걱정과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누리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내가 화를 내봤자 뭐하나. 이미 일어난 일인 걸.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저희도 신기한 일이지만, 어떤 기제로 인해 이재민 중사님의 정신에 적지 않은 영향이 갔고 그 때문에 스물여덟이란 나이에 센티넬로서 각성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정신감응의 한 종류 같습니다.”
“정신감응?”
“텔레파시라고 볼 수도 있고 더 발전이 되면 ESP나 투시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쓰러지기 전 보인 상황으로 보아 투시 쪽 능력은 이미 완성이 되신 것 같습니다.”
누리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걸 느꼈다.
“알았으니까 가 봐.”
“예, 중사님.”
군의관이 의무실을 나가자 누리는 고개를 돌려 재민을 보았다. 재민은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이재민.”
“.....”
“깬 거 다 아니까 눈 뜨지?”
“..어떻게 알았어?”
누리는 피식, 웃었다. 쟨 아무렇지도 않나.
“내가 널 하루 이틀 보냐.”
“그건 그렇지..”
재민은 이마에 손을 얹고 몸을 일으켰다.
“나 어떻게 된 거래?”
“다 들었으면서 물어보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너..”
누리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재민은 군의관이 하는 말을 다 들었음에도 여전히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했던 게, 재민은 센티넬도 가이드도 아니었고 그저 부상당한 병사들을 돌보는 일만 2년 내내 했던 같은 계급의 동기였다. 센티넬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관련이 없던 재민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덜컥, 센티넬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리둥절해 하는 재민은 놔두고 누리는 그냥 더 쉬라며 의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품에 넣어두고 있던 전역 신청서가 담긴 봉투를 찢어 쓰레기통에 구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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